시작하면서
교회를 담임하면서 목회와 교육을 따로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면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방법들이 유행처럼 밀려 왔다가 갔지만 근본적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영혼구원이라는 것이다. 영혼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부지런히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우리의 위치
지금 우리 교회교육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누구라도 교회의 교육이 마땅히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는 교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육의 중요성만큼의 관심과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기성교회들 중에는 교육을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교육에 대한 조직화를 구성하여 나름대로 교육의 효과를 얻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교육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강구하지 못하고 진통을 겪고 있다.
요즘 교회마다 사명을 선포하는 추세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러 주셨음(구약의 신명기 6:4∼9절 말씀의 교훈과, 신약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과 교훈에서 제자를 삼아 가르치게 한 것)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필요하여 설정하는 것이다. 왜 그 설정이 필요한가. 그것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 교육은 시대의 정신을 전승한다. 이런 면에서 교회교육은 신앙을 전승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낡고 노후화된 다리라면 제대로 전승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는 교회교육의 부진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전통적인 교육의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가 어릴 때 교육을 받던 관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한 교회는 교육이라는 수단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교회교육이 아동 및 청소년 전인교육에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학교교육의 세속화 등으로 인해 교회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항상 역부족을 느끼며 지내 온 것이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없거나 부족한 것이 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망설이는 가운데 역사는 한참이나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우리는 또 한번 늦은 자리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편이다.
새로 인식해야 할 사명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시작된다. 모임을 통하여 예배라는 고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그 가운데 설교는 다분히 교육적인 요소가 많다. 오후예배는 찬양예배로 수요예배는 성경공부로 구역예배도 성경공부로 모임을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많은 시간이 교육에 치중하고 있음에도 교육의 효과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교육의 내용이 빈약하거나 교육의 전달방법이 문제이거나 전달자의 문제일 것이다. 아주 적은 교단이지만 한 가지의 방법을 통하여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곳이 있다. 방송과 미디어를 통하여. 특별한 성경공부 교재를 발간하여, 함께 합숙하며 공부함으로, 어느 분야나 우리의 현실은 뒤에 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갈 길은 있다. 시대와 사람들은 특별한 곳에 관심을 갖는다. 그 특별함이 일회성이 아니고 진실함이 있으며, 지속적일 때는 반드시 승산이 있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큐티를 하라고 주일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었지만 하지 않았던 어린이들이 캠프만 다녀오면 곧바로 큐티를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동기유발이다. 교육은 바로 동기유발로 시작하게 된다.
교육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좋은 동기가 부여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반감을 갖고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좋은 동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진실함에서 나와야 한다. 의기의식이 아니라 자각이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 찾는 것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교육이 일반학교에 뒤쳐지게 된 것은 다분히 케네디의 종교교육의 해방으로만 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쉬운 예로 어린이 찬송을 보면 우리가 어렸을 때 찬송을 어린이에게 부르게 한다. 명곡이상의 곡일지라도 시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다. 바꾸어 말하면 청년들이 부르는 노랫말을 내가 들으며 찾을 수 있다면 현대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교회이름도 레포츠교회라고 불리우는 시대 속에서 산다. 딱딱한 교회 이름대신 형용사적 교회이름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도 한번쯤 살펴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발상의 전환이라는 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옛적에 골목에서 깡패를 만났다면 주먹이 센 사람이 이겼다. 그러나 주먹보다도 칼이 칼보다도 총이 앞서고 있는 때이다. 물론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최상일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그렇게만 우리에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늦었어도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교회 교육은 전문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에 부응하는 전문화 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전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없고 부족함 속에서 전문가를 찾아내는 것은 찾아 데려오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그 전문가가 우리의 교육내용을 바로 전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기 때문에 초등학교의 교육보다는 중등학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옛적에는 어린이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어린이에게만 매 달려 있다가는 또 한번 늦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중학생이라면 이제 자리를 잡혀 가는 때이다. 좋은 가치관과 바른 신앙관을 심어 주기에 가장 좋은 때이다. 대상이 정해졌으면 그들을 알아야 한다. 건물도 환경도 내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좋은 것을 준비해야한다. 성공이라고 불리 울 만큼의 새로운 교회는 모두다 학생운동을 했던 목회자들이라는 점이다.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현대에 맞는 말씀으로 전해야한다는 것이다. 원어를 말하고 옛날 예화를 반복한다고 해서 오늘의 학생들이 감동을 받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곧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화와 인터넷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가장 많이 보급되어 있는 매체를 통하여 아직 누구도 시도되지 않은 방법이 바로 전화와 인터넷을 통한 교육이다. 그처럼 떠들썩했던 대학입시를 위한 과외도 인터넷을 통하여 잠잠케 하였다. 모른다고 포기하면 또다시 뒤로 물러 갈 수밖에 없다. 현대는 속도가 좌우한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배움의 자리에 있게 되면 가르침의 자리에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외국교회는 일찍이 인터넷을 통한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교회에 방문한 사람이 이십만 명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충실한 교육의 내용을 전달 할 수 있는 귀한 매체를 가지고 있는 결과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교인들에게 자주 이메일을 보냄으로 더 가깝고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마련 된 것이다. 때문에 교육의 주체자도 교육대상자 개개인의 개성과 소질을 알고 그에 적합한 교육방법을 개발해야 하며, 교육심리학, 교육사회학 등 교육 과학적 지식을 필수조건으로 하고 있으며, 교회교육은 그 모든 영역에서 전문화 되어야 한다. 특히 교회교육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생명을 구원해 내는 거룩하고 숭고한 작업이다. 그러나 실제로 교육의 현장에서 교사들은 교사 자신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공과를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사용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교사들의 현실들을 알고도 교역자가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교역자는 성경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교육의 현장에서는 역시 어설픈 교사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이렇게 신앙의 전승이란 측면에서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는 여전히 학생들이 모이고 있다. 이 이유는 부모들은 교회의 교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도덕성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을 교회에 보내는 것이다.
교육은 일회성이 아니다 특별히 교회교육은 반복적인 학습의 결과이기도 하다. 반복에는 흥미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흥미 거리라 하여도 엎 데이트가 되지 않으면 사멸하고 만다. 계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회교육은 담임자의 문제이기도하다.
교육에 대하여 별로 관심은 없으면서 아직도 교회학교 교장을 겸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앞에서 말했듯이 전문가가 아니면 넘겨야한다. 아니면 전문가가 되어 스스로 반을 맡아 가르칠 만큼 욕심을 내라는 말이다. 목회자의 사명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수많은 유행들이 우리 곁을 따라 왔다가 지나가지만 그 후유증은 교회 안에서 크게 나타난다. 벧엘 성경공부, 셀 목회, 다락방공부, 가정교회.... 모두가 그 때뿐이고 만다. 계속되지 못한다. 물론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목회자가 어떻게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교회전체의 교육적 방법과 사명은 나타난다. 그러기에 교육의 주체 자가 자신을 의지하기보다는 좋은 교사인 성경과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여야한다.
성경과 성령이 없이 아무리 좋은 방법과 교제가 있다하여도 그것으로 마치게 되고 과정으로 끝나게 된다. 성경공부의 교제도 성경을 찾아 쓰는 것으로 과정이 마치어졌다고 다 배웠다는 착각이 있어 다음 단계는 오히려 찾지 않는 교만이 싹 트일 수 잇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생에 한 책을 갖고서라도 전문가가 되라. 우리교회는 마태복음교회라고 불리워도 좋을 만큼 말씀에 전문가가 되라.
좋은 학교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학생들이 찾아가게 된다. 좋은 학교란 좋은 교육시설이 아니다. 좋은 교사가 있다는 말이다. 좋은 교사는 학생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내 목숨까지 바치는 각오의 사명 자들로 이루어진다. 각종 기계 속에서 무슨 사랑이 표현되고 느끼게 되겠느냐고 말할지 몰라도 그 기계는 사용하는 사람들은 애정을 충분히 느낀다.
갈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깃발이 최고의 표시이다. 교회 교육의 사명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깃발을 내 달아야 한다. 아직도 목청 높여 불러야 할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교회교육의 교재는 주어져 있다. 누가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사명을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가 판가름 난다. 대답은 바로 목회자 자신인 것이다. 그리고 방법은 관심을 가지면 되는 것이다.
다시쓰는 교회의 교육적사명
가르침은 효과가 나타날 때 가장 보람을 갖게 된다. 영혼구원 이라는 대 사명아래 복음의 진수를 지니고 있지만 나만 알고 믿는 것으로 끝난다면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변 할 수 없는 사명을 변할 수 있는 것처럼 오도되어서도 안 된다. 끝없이 수정되어가며 시대를 이끄는 사명이 제시되어야 한다. 주변을 탓하거나 환경의 요인을 찾아 분석하지 말고 때로는 덮어주고도 영생의 길에 서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헌금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매 주일 헌금 설교를 한다면 얼마나 헌금이 올라갈까? 그러나 바른 사람으로 교육시킨다면 알아서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은 우선순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수 있다. 이미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 때 배웠다는 말이 유행 할 정도이다. 다 아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기에 우리는 더욱 부담이 있는지 모른다.
요즘 가르침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치우쳐 기도만, 전도만, 설교만... 그러나 교육은 균형있게 자라게 해 준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의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독자적인 개발을 해서 적용시켜야 한다.많이 교육 시키려 하지 말고 제대로 교육시키려는 사명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끝을 내면서
교육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도해 줄 뿐이다라는 사명이 교회 교육의 현장의 사명일 것이다. 인도하는 자는 자기의 의견보다는 주어진 사실을 바로 전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달자가 어떤 자세로 전하느냐에 따라 교육의 결과는 판이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전달자가 되기 위하여 부지런히 공부하는 자세가 선결되어야 한다. 또한 방법이 중요하다. 어떤 방법이냐에 따라 계속적인 교육이 가능한가 아닌가가 판가름 나게 된다. 최첨담의 교육기재를 외면하지 말라. 얼마나 쉽고 확실한 효과가 있는지 이미 입증된 자료들이다.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계속적인 동기부여를 위하여 가장 흥미 있는 방법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교회의 교육은 끝을 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귀한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도 하나의 사명인 것이다. 한 사람의 교육자가 수많은 학생들을 모으고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포기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라.
오늘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길에는 장애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장애물은 지치게 만들고 때로는 그 앞에 주저앉게 한다. 이제 느헤미야를 기억해야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과 믿음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어려움은 찾아온다는 사실, 그러나 어려움이었던 거침돌이 이제는 현실을 딛고 일어서게 만드는 디딤돌이 된다는 것,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과 나를 버리지 않고 동행하신다던 하나님 약속을 다시 한번 기억하라. 그리고 교회 교육 자체가 영적인 전쟁인 것을 통감하고 기도하고 말씀 보는 자리를 회복하길 바란다. 거침돌 앞에 주저앉지 않고 거침돌을 디딤돌로 만드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저와 여러분 삶 위에 넘쳐 대대로 이어질 새로운 교육혁명이 바로 우리들의 교회로부터 시작되어지길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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