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교회의 어린이부는 누가 보아도 어려운 현상이 반복되고 있음을 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프로그램이고 덧붙인다면 관심의 부재와 열정의 부족일 것이다. 교회는 사람의 계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날마다 성장과 성숙되어지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역사 속에서 교회는 흥망이 나타나고 말았다. 그래서 또다시 부여잡고 애를 써 보는 것이 사람의 바뀜과 프로그램의 개발로 점철되어왔다. 지금도 한국의 어린이부서가 성장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치는 가운데서도 그게 부슨 소리냐 하면서 성장과 성숙의 봄을 보이는 교회가 있다. 좀 더 좋은 환경과 좋은 교재가 있다면 엄청난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모든 이에게 변함이 없다. 그러나 시설이 좋은 도심지와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는 고전을 겪고 있다. 정말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해답은 여러 개가 나올 수 있으나 정답은 하나이다. 바로 교사인 나부터가 문제인 것이다.
1.내가 문제이다.
행운이라는 네 잎 크로바를 찾기 위하여 우리는 수많은 세 잎 크로바를 짖밟을 때가 많다. 세잎 크로바의 꽃말은 행복인데....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다른 곳에서 문제를 찾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자신을 바로 볼수 있는 사람이라면 항상 모든 자가 인정하는 성공의 길에 있을 것이다. 우선 내가 교사가 되기 시작한 때부터 돌아보자. 교사가 어찌 되었는가? 목사님이 어 자내 어린이 좀 가르쳐 보게 하는 말에 무턱대고 교사로 나서지 아니했는가? 아니면 내가 어린이들을 좋아하니까 한번 교사 해 보자 해서 시작한 것은 아닌가? 또는 친구가 우리 교회에 교사가 부족한데 한번 해 보자하여 시작하지 않았는가? 어찌하던지 지금은 교사라는 칭호를 받아도 전혀 어색함이 없지 아니한가? 그래서 누가 무어라고 해도 나는 어린이부를 지도하는 교사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남에게 배움을 준다는 것은 재대로 된 자격증을 소유하지 아니한 채 가르친다는 것은 마치 면허증이 없는 의사가 수술하는 것이요. 면허증이 없이 운전하는 사람과 다름이 없다. 이제 새삼스레 교사가 된 우리가 면허증을 새롭게 발급 받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러나 사회와 다른 점이 교회에 있다. 교회는 사람을 선택할 때 속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선택하게 된다. 속 중심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속 중심까지 변심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어린이는 가르치는 교사가 되려면 최소한 구약의 제사장과 같은 조건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첫째가 레위족속에서 탄생되어져야한다. 다른 족속에서 유능하다 할지라도 제사장이 되지 아니한다. 제사장이 되려면 반드시 레위 족속이어야 한다. 오늘날 레위족속이란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교사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예수 이름으로 거듭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스스로 확증 하여야 한다. 거듭나지 아니하고 지식으로만 가르치는 것이 교회의 교사가 아니다. 둘째는 제사장이 되려면 양의 피를 오른귓부리와 오른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발랐다. 이는 희생이 없이는 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것을 챙기려는 교사는 이미 교사가 아니다. 전적 희생이 따라야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셋째는 기름 부음을 받아야 한다. 이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사람을 변화 시키겠다는 것은 큰 잘못이다. 성령이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고 인도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의 자격에 스스로 백점이어야 교사가 되는 것이다. 자격을 갖추었다고 교사가 다 된 것은 아니다. 적어도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곧 열정이 가슴에서부터 불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으름은 교사의 적이다. 게으른 교사는 모든 이에게 소망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교수법을 배우고 부지런히 가르치는 교사는 살아있는 교사가 되는 것이다.
2. 우리가 문제다.
교회의 교사는 혼자가 아니다. 동료들과 함께 가르쳐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함께 하는 동역자의 마음을 갖고 지내야한다. 혼자서 그물을 당기기가 어렵다. 집안에서는 자녀가 한둘인데도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 나의 아니도 아닌 다른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비록 일주일에 몇 번이지만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안다. 그러기에 함께 돌보야 하고 지켜야한다. 이제 교회는 학년중심에서 교사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가끔은 교사들끼리의 협력이 더딜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누가 무어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돌보아야 할 대상이다.
예수님께서도 전도를 내 보내실 때 둘씩 보내셨다.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전도도 기도로 말씀을 상고하는 것도 함께 하라. 시간을 내어 섬기겠다는 결심이 들면 나머지는 성령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신다. 우리가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온갖 것을 함께 동유할 줄 아는 자들이어야 한다. 이상적인 교회학교 교사라면 부부가 한 반을 맡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는 곧 밤낮으로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기도할 수 있고 그들의 영혼에대하여 함께 상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여도 그러한 관계를 가진 교사들과 연합 하여야 한다, 오늘에는 수많은 매체들을 통하여 함께 생각할 교사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곧 인터넷매체를 통하여 교사들의 정보와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이 있음을 알고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네트워크를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곧 교사는 어린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더 많은 양떼를 주 앞으로 인도하도록 해야 한다. 다윗은 전쟁터에서 형들과 싸우지 아니하였다. 그의 적은 골리앗이었지 형들과 다툼이 아니었다. 지금은 내 교회만을 위하여 전도할 때가 아니다. 모든 교회가 살아나야 교회가 산다. 지금도 내 교회만을 위하여 전도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함께 만들어가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3,담임목사가 문제다.
교회의 최종적인 책임은 담임목사에게 있는 것이다. 우선 목사님 자신이 어린이도 모두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백성임을 깊이 인식해야한다. 교인수를 말할 때마다 어린이부서는 빼는 것은 나도 모르게 깊이 인식 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사가 없다고 어린이부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목사 자신이 바로 교사가 되고 사모님이 교사가 된다면 오히려 더 좋은 어린이들을 양육 시킬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가 생기기 전에 부모 교육을 특별히 배우지 아니한 채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된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좌충우돌하는 현상이 많이 있다. 그래도 한 가정을 이끌어 가지 아니한가. 어린이들을 내게 주신 또 하나의 양임을 인식한다면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목사님이 직접 가르치는 어린이부서가 된다면 그것은 정말 좋은 교회로 성장될 것이다. 바쁘다고 일 년에 한 번도 어린이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병들게 하는 요소임을 알아야 한다. 어린이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빠져나가고 찾아지지 아니한 게 큰 문제이다. 담임목사가 직접 나서야한다. 학교 앞에서 전도도 하고 때로는 피에로 복장을 하면서 어린이 앞에 서야한다. 어른만이 교인이 아니고 자라나는 어린이가 바로 교인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 전도사와 교육목사에 다 맡기기 말라 물론 그들은 전문가 일지 몰라도 어린이들이 찾고 있는 것은 담임목사이다. 담임목사님의 철학이 바뀌지 아니하면 그 교회의 어린이 부서는 헤어 나오기 어려운 함정에 빠져 있는 꼴이 될 것이다. 교육 전도사님들을 보면 신학교에서 사실 어린이에 대하여 제대로 배우지 아니하고 그 일을 감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를 모르면서 어린이부서의 수장으로서 그 직무를 다하길 바라지 말라는 것이다. 모른다고 포기하지 말라,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배워야 한다. 어린영혼이 중요하지 나의 체면이 무슨 소용인가?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뜻이 아니라고 하셨다. 나는 반드시 찾아내야할 목회자 인 것을 아는 교회의 목사는 행복한 자이다.
4 정답은 성경이고 성령이다.
교사는 가르치는 자이지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 세상의 학문도 아니고 성경의 내용을 이야기 하는 구연가도 아니다. 생명을 전하고 생명을 살리고 영생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교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통하여 복음이 사랑스럽게 어린이들에게 전달되어지길 원하고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교사는 바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랑만이 최고의 교수법이며, 베풀 수 있는 최대의 무기인 것이다. 그리고 가르치는 것은 성경자체가 가르치도록 내어 맡기는 것이다. 곧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부지런히 집에 있을때 든지 들에 있을 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 하셨다. 성경이 말하게 하는 교사가 좋은 교사이다. 내 말이 필요하지 아니하고 내 행동이 그들 앞에 보여 진다는 것을 제대로 안다면 그 교사는 합격선에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성경을 읽다가 사람들은 변화를 가져온다. 말씀을 듣다가 변화한다. 내가 그 자리에 서지 말아야 한다. 성경이 말하게 하는 교사가 되라. 그렇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비교할 때가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씀은 반드시 물과 불을 요구한다. 곧 성령에 의하여 들려지는 말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왜냐면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들에 의하여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학자가 되기보다는 성경을 제대로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을 통하여 이 시대에 주어지는 말씀이 되고, 그로 인하여 어린이들이 변화되어야 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진리가운데로 인도하고 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생각나도록 도우신다. 뿐만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까지 꽤뚫어 보는 힘이 있다. 살아있는 말씀을 전하여 성령의 사람이 되면 오늘의 어린이부서는 진정으로 새롭게 될 것이다. 성령의 바람이 오늘 우리들의 현장에 넘쳐 나도록 온 힘을 기우려야 할 때이다.
내가 회개하고 성령받은 교사가 되면 내 주변이 변하고 내가 섬기는 교회의 어린이부서에 새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문제는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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