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기업이 병들어가고 있음을 보면서 아무런 대책을 간구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직무유기이다. 특별히 교회학교에 대한 처방은 오래전부터 나타나 있다. 한마디로 병들었다는 것이다. 그 증세가 허약해지듯 어린이수가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으며, 여기저기서 전염병에 걸려 쓸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병이든 가장 좋은 것은 건강할 때 미리미리 예방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치료하는 것인데, 응급처치를 할 것인가? 입원을 할 것인가? 아니면 수술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한다. 어리석은 자는 배가 아프다면 무조건 빨강 약만 바르면 된다고 고집하고 있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 교회학교를 보고 21세기의 학생들이 20세기의 선생님에게 19세기의 교재로 18세기의 교실에서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1.총체적인 증세
교회학교의 수가 줄어들고 어린이수가 줄어드는 것은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둘러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출산의 감소로 말미암아 교회학교의 어린이수가 자연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있는 어린이들 마자 교회학교 밖으로 몰려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들어오는 수보다도 나가는 수가 많다면 그것은 크나큰 병일 수밖에 없다. 어린이가 줄어드니까 교사의 수도 자연히 줄어든다. 전문가도 나타나지 아니한다. 투자도 특별히 하지 아니한다. 그래서 교육의 시간과 예배의 시간을 줄여간다. 너무나도 당연하기에 변명할 기회도 주워지지 아니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가장 교육하기 좋은 때이다. 일대일로 교육하며, 깊이 있는 사귐을 통하여 일찍부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하기에 좋은 때이다. 죽을병에 걸려 있다하여도 소망을 갖는 자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특권이 있다. 바로 교회학교가 그 특권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2.치료의 방법은?
먼저 증세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뽀빠이'라는 만화영화를 보면 시금치를 한입에 넣고 팔뚝을 자랑하며 힘는을 썼던 그 모습이 현상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시금치 안에는 실제 철분 함유량이 100g당 2.2mg으로 달걀 정도에 지나지 않다고 한다. 다른 교회학교에서 안된다하니까 우리교회도 당연히 되지 아니할 것으로 미리 안다는 것이다. 위기가 아니었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하듯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 이다. 중요한 것은 내 교회의 형편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이의 문제인가? 교사의 문제인가? 교재의 문제인가? 아니면 교수법인가? 지금도 이 땅에는 어린이들만 몇 천 명씩 모이는 교회가 있다는 것이고 23명이 일 년 안에 300명으로 자란 교회들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학교를 바르게 진단하라는 것이다. 단순히 약을 받아 먹여서 나을 것이라면 약을 먹어야 하지만, 그렇지 아니한다면 다른 처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응급처취에 미련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응급처치를 했다고 병이 다 나은 것은 아니다. 교회학교에서 단순히 프로그램만 바뀌면 나을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한 두 번 이면 족하다. 그러나 반복이 된다면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다. 요즘 교회학교들을 보면 새로운 프로그램에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현상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많은 프로그램들은 하나의 유행으로 끝이 나고 말 때가 많다. 문제는 기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적어도 그들에게 복음으로 살 수 있도록 무장 시켰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된 어린이 한 명만 있어도 그 교회학교는 소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매일같이 사 먹이고 얻어 먹이는 부모가 있다면 그 아이들의 형편은 어찌되겠는가?
3.기초조사
누구나 병원에 들어가면 기본적인 조사를 한다. 몸무게, 혈압, 맥박, 피검사 등이다. 교회학교도 기본적인 조사를 해 보아야 한다. 때때로 교회학교의 기본적인 조사를 해 보려고 해도 기본이 되는 서류가 없다는 것이다. 잘해야 출석부와 일지 정도이다. 기록을 상실한지 오래다. 어떤 어린이가 교회학교의 어린이부를 마쳤다고 하여도 그가 몇 회로 언제 마치었는지 모를 정도이다. 기록을 다시금 해야한다. 숫자만 기록하기에 구체적인 상황이 파악되지 아니한다. 마치 병상일지에 아프다는 말 뿐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구체적인 기록이 있어야 한다. 영적인 모든 것에 대한 정보가 준비 되어 있어야 한다. 지금은 많은 사람을 찾기보다도 거듭난 사람을 찾아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중요하다. 한 영혼이 중요하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이유는 그 한 사람이 없어서가 아닌가? 에스겔 꼴짜기에 누어있던 뼈들이 말씀을 듣고 일어났다. 교회학교에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지 살펴야 한다. 누가 설교를 하는가? 대부분 교육전도사가 맡을 경우가 많다. 그들은 단순히 학생이기 때문에 또는 아직 숙련되지 못한 교역자 일 경우가 많다. 면허가 분명하지 아니한 운전자에게 자동차를 맡긴 결과는 뻔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바쁘다. 기도하여 받은 말씀보다는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얻은 말씀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다행이다.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말씀을 전하는 곳도 있다. 마찬가지의 결과이다. 배우지 않고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년 동안 반복했다니 더 어처구니없지 아니한가? 이제 담임교역자가 나서야한다. 아니면 사모님이 나서야한다. 그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는 자가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 일 년에 한 사람씩 전도하는 사람이 있고 그에게 전도된 사람이 계속적으로 배가가 되면 10년이면 1000명이 넘는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무엇을 먹이느냐도 중요하다. 아이들이 좋다는 인스탄트 음식에 익숙하다면 건강에 적신호가 나타날 것이다. 재미만이 제일이 아니다. 프로그램만이 더더욱 제일이 아니다. 말씀이 제대로 먹혀야 산다. 거듭난 사람이 되었다면 단단한 음식이라도 좋다. 아파야 음식을 조절한다는 것은 늦은 것이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되는 그 때가 또한 가장 빠른 때이다. 목숨을 걸고 어린이에게도 좋은 말씀을 먹여야 한다. 어린이는 낳기만 했다고 성장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교육과 운동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키와 지혜가 자라며,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존귀함을 받아야 한다. 살아있다면 성장과 성숙이 함께 오는 것이다. 내버려 두지말라야 한다. 지하실에 가두거나 옥탑에 내버려두지 말고, 티브이나 인터넷에 빠지도록 혼자 있게 하지 말아야 한다. 돌보아 주어야 한다. 내가 직접 돌보지 못하면 형이 돌보게 하면 된다. 어린이에게 또 다른 어린이를 붙혀 두어 서로가 격려하고 돌보게 해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오 부장, 십 부장 등의 명칭을 두어 서로를 격려하고 기도하게 하는 모임을 갖도록 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학교와 가정생활가운데도 깊숙이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좋은 집에 살아도 아플 때가 있고, 가난하고 어려울 때 아플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아픔은 동일하다. 좋은 시설이 교육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고 아픔을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4.치료법
적어도 우리 교회학교는 어떤 병에 걸려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식이요법을 하는 것이 좋은지, 운동을 해야 하는지, 수술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진단하는 의사가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가 중요하다. 그러기에 어린이라 할지라도 죄악과 세상에 대하여 강한 저항력을 키워야 한다. 중병에 걸려는데도 학교 공부가 중요하다고 말할 자가 누구인가? 우선 병을 치료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의 심령에 성령의 불이 일어나도록 간구하는 귀한 자들이 모여야 한다. 적어도 이 땅의 어린이들을 위하여 부흥회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을 찾지 못하는 병자가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좋은 병원을 준비하기 위하여 교회는 끊임없이 좋은 교사를 발굴해 나가고, 병들어 데려온 교회학교는 고침을 받고 회복되는 꿈이 있어야 한다. 아픈 몸을 안고 살아가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묵묵무답
하고 있는 교회나 교사나 부모가 있다면 그들의 죄는 더욱 클 것이다. 지금은 마치 전염병이 창궐하는 듯 하는 시기이다. 한 교회, 나만 안전하면 되는 때가 아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회복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링겔병에 의지하는 듯한 교회학교를 더 이상 보아서는 아니된다. 아버지의 간절함으로 딸이 나음을 받았고, 어머니의 간절함이 죽은 청년도 일으킴을 받았다. 백부장의 간구는 종을 낫게도 하였다. 이제 아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간구해야한다. 하나님 앞에 긍휼히 여김을 받도록 깊은 기도의 모임이 선행 되어야 한다. 고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내가 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을 의지하고 지혜를 구하는 것이 어린이를 맡은 자들의 자세이다. 잘못 먹이고, 무관심하게 키워왔던 모든 것에 대하여 회개하고 새로움을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복음으로 먹이고 기뻐 찬송하며, 감사의 기도를 쉬지 않고 전도하는 어린이들로 커 갓다면 오늘의 아픔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앞에 있는 어린이에게 우리는 결코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의 핑계를 해서는 아니 된다. 교인 한분 한분이 귀하듯 어린이 하나하나가 귀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이 땅에서 갈아져 간다면 그 피 값은 누가 감당해야할 것인가? 교사라 칭함 받은 여러분은 조용히 기도수첩을 빼내어 어린이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밤낮으로 손을 들고 눈에서 눈물이 강물이 흐르듯 기도해야한다. 길에서 주려 혼미한 어린자녀를 위하여 그렇게 하라고 부님은 이미 오래 전에 말씀해 오고 계신다.(애2:18-19) 좋은 교사는 나타나지 아니하지만 그 교사에게 배운 어린이는 빛과 같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제 여러분을 다시금 만났을 때는 어린이를 위하고, 교회학교를 위한 특별기도회에서 만나기를 소원한다. 고침 받은 교회학교에 꿈을 버리지 말라. 다시금 떠들듯 찬송하는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상상해 보라.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새 꿈이다. 올해는 그 꿈을 이루는 복된 교회학교가 되고, 교사들이 되길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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