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가르치기 전에 배워야 한다.

설교/교사를 위한 설교

by yesoozoa 2022. 1. 5. 09:21

본문

728x90

세월호 사건이 지난 후 부모로서 스스로 자식을 져 버리는 수많은 사건 속에 서 있는 초라한 모습 속에서도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니 같은 어른으로서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횡단보도에서 빨간 신호인데도 당당히 건너는 어른들’, ‘길거리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어른들’, ‘운전 중 교통 법규를 전혀 지키지 않는 어른들’, ‘아이 앞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욕설과 비난을 쏟아내는 어른들’, ‘주변 사람들과 인사 나눌 줄도 모르는 어른들’, ‘나와 내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온갖 이기적인 행동들을 해대는 어른들’, ‘돈 앞에서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어른들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왕따’, ‘폭력등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들의 인성이 문제라고 말한다. 지식보다는 인성이 더 급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부모의 역할

크리스천 부모의 역할부재도 여실히 드러났다. 부모가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자녀로 하여금 무관심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느낌을 심어주고 이는 곧 버림받음의 느낌으로까지 이어진다. ‘나는 자녀의 취미나 적성, 고민거리, 친구이름 등을 잘 안다라고 스스로 대답할 때 예라고 답할 수 있는가? 자녀들은 우리 부모가 나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고 피부로 느끼고 있는가? 또한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고 그 시간동안 내용은 충실한가? 모두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부부갈등은 자녀의 정서를 급속도로 파괴시키는 바이러스다. 크리스천 자녀들은 엄마, 아빠가 화해하는 것보다는 다투는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자라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부부갈등의 원인이 자녀 때문이라는 것이다. 크리스천 자녀들 역시 위험할 정도로 부부갈등에 노출되어 있었다. 절반 이상의 부모들이 자녀 때문에 갈등하고 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자녀 몫으로 전해진다. 이는 자녀들로 하여금 매우 해로운 죄책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 자녀를 양육하는 사명을 학교의 선생님이나 학원에 넘겨주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그런 모습으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이뤄져야 한다. 자기 자식을 제자로 삼아 주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가정은 무엇보다도 자녀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는 곳이 돼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기를 살려주어야 한다. 부정적인 말과 꾸중보다는 긍정적이고 칭찬하는 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어렸을 적 부모의 말 한마디는 그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 자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신성한 자존심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럴 때 긍정적인 가치관으로 인격이 형성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이 원하시는 도구가 되어 가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부모는 자녀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녀들 때문에 부모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을 얻는다. 그 기쁨은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 할 수 없다. 자녀는 부모에게 진정한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다.

 

이렇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자녀에게 부모가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실상 부모가 자녀에게 베푼 것보다는 자녀로부터 얻는 기쁨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부모, 그 부모를 자녀는 공경하고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가정의 모습이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고 마음을 얻은 후에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부모가 있는 가정, 부모에게 순종하며 감사하는 자녀가 있는 가정이다. 그 안에는 물론 하나님의 사랑이 전제되어진다. 이 모습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정의 부모와 자녀 관계이다.

 

부모의 자세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예절이나 규칙은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대부분은 교통질서도 잘 지키고 어른들께 배꼽인사도 잘한다. 그랬던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 어른들의 주변 신경 쓸 필요 없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 ‘남을 짓밟고서라도 일단 이기고 봐라’, ‘적당한 거짓말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필요하다등의 그릇된 가치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잘못을 해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도덕 불감증에 걸리게 된다. 유치원 때 배운 우리 아이들의 바른 생활 태도와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어른까지 쭉 이어지게 하려면 가정에서부터 인성 교육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려면 부모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배려하며, 먼저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생활 곳곳에서 인성 교육이 필요한 현장을 수도 없이 봐왔다.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힘들다고 뒷전으로 미루기에는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도 크고 아프다는 것도 경험했다.

 

가장 최소한으로 세 가지는 계속 해야한다.

첫째로, 몸소 모범적인 행동을 보이기다.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기 때문에 부모가 바른 길로 가면 아이들은 절대 샛길로 새지 않는다.

 

둘째로, 가족끼리 존댓말 쓰기다.

친절하고 예의 바른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반드시 존댓말을 가르쳐야 한다. 요즘은 친구 같은 부모가 인기를 끌면서 친구인지 부모인지 헷갈릴 정도로 거리가 없는 집안이 많다.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부모는 친구가 돼서도 안 되고 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자녀와 친밀감은 필요하지만 부모로서의 권위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엄마 물 줘라고 할 때 물주세요 라고 해야지!” 라고 교정을 하기 전 부모가 먼저 아이에게 존댓말을 해보자.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도 존댓말로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셋째로, 하루에 한번 이상 포옹해주기다.

스킨십이 중요한 줄 알지만 바쁘게 지내다 보면 놓치게 되는 것 또한 스킨십이다. 유명한 가족 심리 상담가 버지니아 사티어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루에 네 번의 포옹이 필요하고 계속 살기 위해서는 하루에 여덟 번, 성장을 위해선 열 두 번의 포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아이를 볼 때마다 따뜻한 포옹을 해주자. 포근한 엄마의 품을 충분히 느낀 아이는 그 사랑을 남들과 나눌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부모의 교육

자녀 교육을 단회적인 것으로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왜냐하면, 자녀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로봇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서서히 만들어지는 조경목과 같다. 하루아침에 조경목을 만들기 위해 꺾으려 한다면 그 나무는 부러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아이들을 자기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아이들의 인격과 신앙과 성품은 파괴되고 만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경건하고도 훌륭한 한 인격체로 양육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속적이면서도 일관성 있는 교육이다. 여기서 '일관성'이라고 할 때 그 일관성은 한 가지 방식의 일관성만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공부를 일관성있게 강조하거나, 신앙만 일관성 있게 강조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의 문제를 훈련 지침의 문제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은 훈련 지침의 문제보다는 대다수 자신부터 이 훈련 지침에 훈련되어 있기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기도를 가르치고 경건을 가르치면서 정작 자기는 기도와 경건에 훈련되지 못한 것과 같다. 왜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훈련시키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그 이유는 훈련이 되어있지 못한 사람은 훈련받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훈련되지 못한 사람은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 그 훈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실제적인 문제를 알지 못하고, 또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다시 말해서 훈련 지침에서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고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 문제를 극복하도록 돕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훈련되지 못한 부모는 자신의 가르침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자녀들에게 결코 그 권위를 인정받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자신도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자기에게 그 고충을 강요하는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부모들이 사랑으로 자녀를 교육한다면

첫째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자.

조건부 사랑을 하지 말고 자녀를 인격적으로 모욕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공부를 잘하거나 나를 닮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조건부로 사랑하는 것이다. 무조건적 사랑을 하자. 그런 사랑을 받는 자녀는 부모를 기쁘게하기 위해 공부를 하든 음악을 하든, 다른 무엇을 하든 열심을 다하게 된다. 또한 자녀를 구타하거나, 방임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거나,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거나, 성취할 때까지 사랑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목표와 이상을 수용하도록 강요하거나, 우리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을 때 자녀를 격노케 한다. 부모가 자녀를 신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학대할 수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부정적 기대(불신)를 하거나,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거나, 형제 사이에 또는 다른 친구와 경쟁을 부추기거나, 자신은 안하면서 아이에게 하라고 지시하는 이중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심리적으로 자녀를 학대하고 자존감을 손상시킬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자녀들이 부모를 존경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것은 자녀양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면 벌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 보는 데에서 벌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자녀를 징계할 때에, 매를 대는 것은 불순종하는 행동 직후가 가장 효과적이다. 반면에 화가 났을 때나 부모의 기분에 따라 징계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왜 때리는지 이해시키고 징계한 다음에는 사랑을 표하는 것이 중요하다. 훈계는 즉각적으로, 공정하게, 친한 사이에서, 엄격하게 행해야 한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