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이지'이라는 가요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앉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다른 사람이 앉기보다는 내가 앉아야 하고, 너는 앉는데 나라고 못 앉으란 말은 안된다고 자리싸움으로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제자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찾아가 두 아들의 자리를 부탁하였다. 하나는 오른편에 또 하나는 왼편에 앉혀 달라는 것이었다. 자리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태도는 우리 사회에 수많은 부작용을 불러 일으켜 왔다. 권위적인 가부장 의식, 혈연과 학연과 지연에 의한 폐쇄성 및 그릇된 의리의식, 창조성을 말살하는 교육환경, 여성차별, 출세지향적 계급의식이 그런 부작용들이다. 자리로 인정받으려는 태도는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가기 위해 없어져야 한다. "어떤 자리에 있느냐?"보다 "얼마나 자기 역할을 잘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명함에 자리를 많이 표시해 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보다 소리 없이 뒤에서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한 때이다. 모두가 지도자가 될 것이 아니라 지도자를 잘 도와서 그 지도자가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나는 모서리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싶다!"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자리가 일을 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쉽게 하고 많이 하게 한다. 그러나 그런 자리는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자리가 비어있다고 다 내 자리가 아니다. 앉아야 할 사람이 앉아야 한다. 물론 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자리에 맞는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 내야한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할 때 오히려 도망하셨다. 하늘의 자리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어찌 자리를 원하시겠는가? 오히려 섬기려는 자리가 예수님의 자리라고 말씀하셨다. 성탄이 다가온다. 내 자리는 어떠한가? 내 역할은 타당하며, 지속할 이유가 있는가? 섬기는 자리를 내 자리라고 말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때이다. 좋은 자리는 내가 앉고 나쁜 자리는 네가 앉으라가 아니라. 좋은 자리 만들어 능력있는 자를 앉히는 자가 자리의 주인인 것이다.
세례 요한이 활동할 때 그는 인간적인 면에서는 예수님보다 앞선 존재였다.. 생일도 6개월 앞서고, 사역도 앞서고, 활동의 폭도 앞서고, 인기도 앞섰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철저히 높이면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앞섰다. 우리도 앞서는 것이 부담이 되기보다는 앞서는 자리에 있기를 힘써야 한다. 그러나 앞선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예비하는 선발대로서 앞서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앞서기를 힘쓰되, 위세를 부리는 자로서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서 앞서야한다.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보면 정말 감동이 된다. "어떻게 저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순종할까?" 맞다. 훌륭한 사람이란, 자리의 주인보다 자리에서 역할을 잘 감당한 사람이다. 그들은 오히려 앉아있는 것이 죄송할 정도로 섬김의 자세를 가진 자들이다. 이 땅에는 아직도 섬겨야 할 사람이 많기 때문에 우리들의 자리는 얼마든지 있다. 년말이 되어갈수록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을 향하여 내 것을 주어 오히려 그들이 만들어 주는 복된 자리에서 좋은 크리스마스를 꿈꾸며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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