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것은 기준이 잇고 그 기준만큼 삶의 질은 현저하게 다릅니다. 교회도 기준이 있고, 가정에도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이 너무 낮아서도 또 편협 되어서도 안 됩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9)
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도 고백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면 소속이 어디든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찬양할지언정 비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여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무엇입니까?(40)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그 사람이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 편에 서있는 우리를 위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내 편이 아닙니다. 예수님 편에 서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비록 내 의견이 맞지 않고 내 가치관과 맞지 않더라도 주님 편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더 적극적인 이유를 말씀합니다.(41)
예수님께 속한 자라고 해서 어떤 친절과 도움을 베풀면 보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귀신들려 정상적으로 살지 못하고 갖가지 고난 가운데 처한 사람으로 예수님으로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얼마나 좋은 일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상을 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소자 하나에게 물 한 그릇 대접한 것도 상을 받는데 귀신을 쫓아냄으로 사람을 살렸는데 상을 받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마음의 넓혀야 합니다. 사역의 기준점을 넓히고 높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의 가져야 합니다. 관용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넓히면 우주를 품을 수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좁히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내도, 자식도 품을 수 없습니다. 상대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보지 않고 자꾸 내 방식으로 내 주문대로 내 신앙대로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방해하고 금지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즈음 신앙생활 그래도 오래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저마다 내가 복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이 중요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방법대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관용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꽃이 아닌 열매를 찾으시는 하나님”(요15:8) (0) | 2021.04.14 |
---|---|
대표교인이되라!(마10:1-4) (0) | 2021.04.06 |
왕으로 사는 길(벧전2:9-10) (0) | 2021.03.04 |
“권세 받은 자”(마28:18-20) (0) | 2021.02.26 |
“예수를 만나라”(막5:1-11) (0) | 2021.02.08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