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다니 지역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베푸시는 장면에 참석하셨을 때 일어난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가 순전한 나드 향유가 담겨있는 옥합을 가지고 와서 깨뜨려 주님의 발에 붓습니다. 그리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습니다. 이것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화를 내면서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300데니리온의 값을 받을 것이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면 얼마나 좋을 것인데 예수님의 발에 부어 허비하였다라고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우리가 먼저 알 수 있는 것은 은혜 지향적인 삶과 계산 지향적인 삶이 있는데 헌신이라는 것은 은혜지향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지향적인 삶을 살아갈 때 주님께 대한 참된 헌신이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만큼 돕고 싶은데 하나님 내가 주를 위해서 이렇게 헌신하고 싶은데 나에게 차고도 넘쳐서 계산하지 않을 만큼 더 큰 은혜를 주십시오.’라는 것이 우리의 영적인 계산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진실한 헌신을 이루는 삶은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이며 결국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것이 됩니다. 진실한 헌신을 이루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큰 축복의 섭리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헌신이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면 모든 개념이 달라집니다. 사랑하면 우리에게 첫째 생기는 개념이 무엇입니까?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주지 못해서, 주어도, 주어도 안타까운 마음만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축복 받으려고 살지만 시간이 지나면 헌신하려고 살잖아요. 헌신이 이루어지는 삶이야말로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헌신이 이루어지는 삶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것을 얻는 것입니다. 헌신한 삶은 후회가 없습니다. 쌓아둔 삶은 후회가 남고 아쉬운 것입니다. 헌신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뜻과 섭리를 이루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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