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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신앙훈련1

목회뱅크/교사강습교안

by yesoozoa 2021. 12. 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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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헨리(O. Henry)의 작품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떤 한 남자가 아내를 잃고 어린 딸만 데리고 살았는데, 직장에 갔다 오면 신문만 보고 딸아이가 공부하다 모르는 것이 있어서 물어 보면 가르쳐 주지도 않고, 함께 놀자고 해도 놀아 주지도 않고 무관심하게 대해 주니까, 그 소녀가 점점 자라서 불량한 짓을 하고 거리의 깡패가 되고 말았다. 후에 그 소녀가 죽어서 천당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가 너 같은 사람은 여기에 못 들어 갈 것이라고 말하니까, 이 때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니다. 그 소녀를 들어오게 하라. 그러나 너무 바쁘다고 해서 자기 자녀를 돌보지 않은 이 아버지 같은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하라고 말씀했다는 이야기이다.

 

자녀의 교육을 방치하거나 기피할 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부모는 알고 있다. 그러나 갖가지의 핑계와 이유로 등한시되고 있다. 함께 교육해야할 교회조차도 방관하고 잇는 실태이다. 교회에서 겨우 일주일에 한번 성경공부를 가르친다고 하나 실제적인 시간은 몇 분에 불과하다. 그 몇 분으로 일주일을 살게하고 나아가 전인적인 기독교인이 되리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아는 것은 많아져도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향기로 살지 못하기에 오히려 많응 수를 세상에 그저 내 보내고 마는 안타까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말씀대로 어린아이에게 가르쳐야한다. 앉았을 때든지 일어설 때든지 때를 가리지 말고 말씀대로 사는 법능 가르쳐야한다. 아니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훈련시켜야한다. 어려서 배운 훈련은 평생에 귀한 무기로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줄 것이다.

 

1.교육보다는 훈련이어야 한다.

 

가르침(Teaching)은 상대로 하여금 지식을 알게 하는 것이 주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지식을 제공해주고 정신을 채우는 일을 한다. 훈련(Traiing)은 상대로 하여금 행동을 하게 하는 것으로 기술을 제공하고 습관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훈련은 가르침보다 훨씬 이른 시기, 곧 어린 시기에 가능하다. 어린아이에게 바른 태도를 가르칠 수는 없으나 훈련은 할 수 있다. 훈련은 징계를 수반한다. 가르침과 훈련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 함께 행하여져야지 곧 훈육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직접 가르쳐 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배워가는 것이 많은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바른 관계를 갖지 않는다면 곧 잊혀지게 된다. 거의 자동적으로 품성을 바꾸어 제대로 된 신앙인이 되게 하여야 한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타 종교에서는 어릴수록 그들에게 훈련을 통하여 신앙을 갖도록 하고 있다. 그 목적이 악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어릴 때 훈련은 분명하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성경은 어릴 때 말씀을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있다. 쉐마라 불리우는 신명기 6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라고 하였다. 잠언 22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다. 실제적으로 디모데는 외할머니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하여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다고 말하고 있다. 이 모든 말씀들은 가르침으로만 정의 된 것이 아니라 훈련하라는 말씀들이다.

 

 

2.어릴수록 해야 한다.

 

가장 좋은 학습의 시간은 바로 태중에 있을 때이다. 부모가 태중에 있을 때 믿음의 생활을 바로 한다면 자녀는 그야말로 모태신앙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수많은 모태신앙을 가진 자들이 못해신앙이라고 불리 울 만큼 신앙과는 거리가 있다. 부모가 제대로 된 신앙생활에서 자녀에게 가르침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를 보면 부모는 교회에 나가나 자녀는 반드시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유아세례만 받으면 저절로 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 가족이 다 믿음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을 통하여 습관을 갖게 되고 그 거룩한 습관은 좋은 신앙인으로 양육될 수 있다. 세 살 버릇이 여든을 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이미 세 살이라면 배울 수 있는 것과 훈련되어질 것이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수많은 미디어를 통하여 복음이 자리를 잡기 전에 세상의 온갖 것들이 홍수같이 밀려와 자녀들의 생각과 마음을 자리 잡고 있다. 교회에서 유치원과 어린이 집을 운영하고 잇다하여도 신앙교육을 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정과 교회를 통하여 가장 우선적으로 이 훈련을 하여야 한다. 물론 부모를 위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부모님들은 아버지학교나 어머니학교를 통하여 훈련을 받지만 너무 늦은 나이에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자녀가 혼자이고 아직 어렸을 때 말씀으로 바로 가르쳐야한다. 성경 속에서 모세와 사무엘이 젖 떼 땔까지 양육하였는데 평생에 그 법을 떠나지 아니하고 지키는 자들이 되었다. 젖 먹일 때 그때가 가장 훈련을 시키기에 적기라는 것이다. 가르치면 가르침을 받는 대로 훈련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인박히듯이 되어지는 때가 바로 이 때이다. 조금 지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통하여 교육의 시간도 줄어들게 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 과학이라는 홍수로 인하여 창조론이 진화론으로 바뀌고 대학에 들어가면 철학이라는 학문을 통하여 인본주의 사상이 그들에게 엄습해 온다. 성경은 어렸을 때 말씀이 그들에게 들려지고 알아지고 외워지고 생활하도록 권면하고 있음에 귀를 기우려야한다.

 

 

3. 바로 시작하라

 

교육과 훈련은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순간 시작하여야 한다.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고 알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성품을 갖고 믿음의 생활을 하도록 하려면 바로 시작하여야 한다. 시작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으로 가정과 교회에서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가르칠 사람과 가르침을 받을 사람이 바른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훈련은 되지 아니한다. 일반적으로 군인이 훈련을 받을 때는 빨간 모자를 쓴 조교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가를 알게 되듯 가르치는 사람이 영적권위를 갖고 아이들 앞에 서야한다. 영적 권위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알아야 하고 모든 일에 시범을 보일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가르침과 훈련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유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가르침이나 훈련을 그 과정만 피하면 곧바로 교육과 훈련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향한 배려와 사랑이 보여져야하고 실제로 나타나야 한다. 훈련은 반복되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시작부터 힘이 든다. 어린아이들이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부모나 선생님이 원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원하는 입장에서 훈련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 강압적이거나 협박적이라면 훈련은 곁길로 나가게 된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해야 한다. 내 자식이라는 생각보다는 주님의 명령을 자녀에게 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4.모범을 보이라

 

아이들은 보고서 배우는 것이 듣고 배우는 것보다 훨씬 많다. 자녀들이 장성하였다 하여도 포기하지 말라. 부모와 교사가 본을 보여야 한다.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게으르지 않고 해야 하며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본을 보여야 한다. 훈련은 시범적인 것이 없다면 기준접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너무 어려운 목표를 두지 말라. 하루아침에 어떤 정예부대를 만드는 마음으로 임하지 말라. 훈련은 부모나 교사가 시킬 수 있으나, 변화와 진정한 참여는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된다. 자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일정한 분량의 훈련과 내용이 점차적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아무 뜻도 모르면서 흉내 내려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나면 결국 시간과 수고로움이 헛것이 되기 쉽다. 예수님께서도 다 큰 제자들에게도 본을 보이셨다. 본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금물이어야 한다. 훈련은 모두가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에게 맞는 만큼이 필요한 것이다.

 

훈련을 하려면 기도하고 시작하라. 비록 자녀가 내 자녀라 할지라도 내가 늘 가르치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기도는 시작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혼자서 다 훈련시키려 하지 말라. 주변에 더 좋은 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가르쳐야 한다. 내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부족하고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힘이 든다. 그러기에 훈련이 오히려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도록 웃음과 기쁨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신앙훈련이라 할지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성품 곧 품성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인간의 예의와 범절이 선행되어야 한다. 보이는 부모와 형제를 섬길 마음이 없이 하나님만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순종을 강요하기보다는 경청에 대하여 먼저 훈련시켜야 한다. 잘 들어야 믿음도 생기고 지식도 생기며 배울 준비를 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만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주변의 형제나 친구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듯 하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주어진 과제를 아는가 모르는가로 결정짓지 말고 과정을 되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 훈련과정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훈련이라는 이름보다는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 또는 스토리텔링 이라는 명칭으로 시작해도 좋다. 훈련이라는 용어는 군대용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연히 충성과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내용이 신앙이다. 하루아침에 또는 몇 달만 하는 훈련과정이 아니고 평생에 이루어질 과정인 것을 알아야 한다. 믿음으로 시작하고 기도로 진행하되 감사로 마감하는 훈련은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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