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해 지는 것과 훌륭하게 되는 것
독수리-30년 다시 살기 위하여
야구인생
스페인의 프로 축구팀에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이 있습니다. 세계의 좋은 선수란 선수는 다 끌어들이는 팀이지요.물론 성적도 항상 상위권입니다. 그런데 이 축구팀이 하나 악명 높은 게 있는데, 감독 목숨이 파리 목숨이라는 겁니다. 지난 22년 동안 무려 19명의 감독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니까 감독 평균 수명이 1년이 조금 넘습니다.
반면에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팀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지금까지 무려 25년 동안 혼자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두 팀의 성적은 어떨까요?
돈은 돈대로 들이고, 감독을 수시로 바꾸는 레알 마드리드는 지난 6~7년간 챔피언스 리그에서 죽을 쓰고 있습니다. 잘 올라가 봐야 16강, 8강입니다. 그런데 맨체스터는 늘 결승, 준결승에 올라갑니다.
감독을 바꾼다는 것은 변화를 위한 것이지요?
그런데 한쪽은 그렇게 변화를 주는데도 나아지질 않고, 또 한 쪽은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도 항상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무슨 얘기일까요? 아무리 변화무쌍하더라도 그 변화가 외적인 변화에 그치고 만다면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 변화라고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반면에 외적으로는 별 변화가 없는데도 계속 성장해 간다면 거기엔 뭔가 남들이 알지 못하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깁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거기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선거를 해서 새로 일꾼을 뽑고, 팀에서 선수를 계속 바꾸고, 감독을 바꾸는 등등의 일은 모두 변화를 위해서입니다. 만약 변화가 없다면 바꿀 이유가 없겠지요? 여자들이 비싼 옷을 사 입고, 새로 머리를 하고, 신발을 바꾸는 것도 변화를 위해서입니다.
교회에서 설교하고 양육하고 공부하는 것도 목적은 딱 하나, 변화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만약 계속해서 변화가 없다면 그건 무슨 얘길까요? 그건 생명력이 없는 것이고, 성장이 멈춘 것이고, 결국은 그 모든 일이 다 가짜라는 걸 증명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언제나 변화를 통해서만 증명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롬12: 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그랬습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변화가 그 목적이라는 겁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분별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두 가지인데, 내적으로는 성숙, 겉으로는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성숙과 헌신! 이 두 가지가 변화의 실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가운데 열망이 생기고, 그 열망이 곧 변화로 나타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변화는 내면의 변화가 중요한데, 그 내면의 변화는 말씀 드린 대로 성숙으로 나타납니다. 성숙은 이겨내고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공동체의 어떤 사람을 지칭하면서 “저 사람 변화됐어!”그런다면 그 얘기는 그 사람이 말씀으로 변화되고 인격적으로 성숙해졌다는 말일 것입니다. 즉 유혹 같은 것도 잘 이겨내고 마음에 어떤 갈등이 와도 잘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분노든, 돈이든, 두려움이든 오는 데로 그것을 이기고 다스리면 됩니다. 다스리는 자에게 승리가 오게 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성숙하기 위해서는 항상 여러분의 내면을 채워야 합니다.
많은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어느 날 보면 엉뚱한 일을 저질러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타이거 우즈 같은 사람들, 골프 황제로서 부와 명성을 동시에 가졌는데,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스캔들로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잖아요.
이유가 뭘까요?
속이 허해서 그렇습니다.
그가 누리고 있는 인기나 지명도는 50대의 성숙도를 가지고도 감당 못할 정도인데 그것을 이미 20대 때 누리기 시작한 겁니다. 반드시 문제가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10대 말이나 20대 초에 뜨는 아이돌 스타들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도 속이 차지 않으면 어느 순간엔가는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대로 두면 남들이 보지 않는 데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나이 30이 될 때까지 노예로서 수없이 많은 훈련을 시킨 이유가 뭐겠습니까?
속이 꽉 차길 원하셨던 겁니다. 그래야 애굽의 총리가 돼도 흔들리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혹 남들보다 특출나다면, 그것 때문에라도 더 기도해야 됩니다.
새벽제단을 쌓고, 말씀을 듣고 해서 속을 꽉 채워야 여러분이 여러분의 장점 때문에 허해지질 않습니다.
한 번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껍데기에 비해서 내면의 세계는 어떻습니까? 꽉 차 있습니까?
공허해져 있다면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더 많이 다스리는 능력을 성령님께 구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변화입니다. 성숙은 다스림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종노릇하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로, 변화라는 것은 외적으로는 헌신입니다.
내적으로는 성숙해지는 게 변화라면 겉으로는 헌신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겁니다. 헌신이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모습입니다. 즉 행동의 변화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지요. 더 많은 시간을 드려야 되고, 하나님 사역에도 더 많이 몸이 가야 합니다.
작년에 비해서 금년에 뭐가 변화됐습니까?
생활 패턴에 있어서 뭐가 변화됐습니까? 기도 시간이 좀 늘었습니까? 성경 읽는 시간이 좀 더 길어졌나요? 헌신을 더 하십니까? 집회나 소모임에 참석하는 횟수가 더 늘었습니까? 만약에 여러분 행동에 하나도 변화가 없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전혀 변화가 없는 겁니다. 헌신엔 변화가 있어야 됩니다. 내면의 성숙이 있은 다음에는 반드시 외적 변화가 있어야 됩니다. 작년과 똑같은 모습의 생활 패턴으로 살면, 그건 내년까지 이어질 거고, 그건 다시 후년 내 후년으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평생 똑 같은 모습으로 살다가 죽게 되는 겁니다. 그런 고리를 끊고 외적인 변화를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헌신한다 하면서 아무 것도 변화되는 게 없다면 그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지 못한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얘기를 잠깐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셨는데, 웬만큼 시간이 지나니까 그 복이 더 이상 복이 아닌 겁니다. 해서 만족할 줄 모르고 더 큰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 구하는 게 하나님 백성으로는 합당한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들어 주실 리 없지요.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죄의 길에 빠집니다. 해서 그들을 바로 잡으려고 하나님께서 무수히 많은 선지자들과 사자들을 보내셔서 권고하십니다.
항상 그렇듯이 말씀으로 자극을 주실 때 변화가 되면 좋겠지요. 그런데 듣지를 않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자녀니까 바로 잡으려고 고난을 주시는 거지요. 나라를 망하게 하고 이방족속들을 일으켜서 그들을 포로로 잡아가게 하십니다. 물론 나중엔 다 회복을 시켜주시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패턴을 보면 항상 비슷한 싸이클 입니다. 죄악에 빠지고 거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오고, 그래서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나중에 울면서 돌이키면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니까 범죄-심판- 회개- 회복 이 과정이 계속 거듭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민족적으로도 오지만 개인에게도 똑 같은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화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원하시는 대로 변화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까요? 마찬가지로 우리 개인에게도 고난을 주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눅15장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얘기가 나옵니다. 탕자가 왜 고난당합니까? 말로 안 되니까 아버지가 그냥 네 맘대로 해라 버려버리지요. 일종의 유기인데, 거룩한 유기인 겁니다. 한 번 네 맘대로 해 봐라 하는 겁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지요? 깡통 찼습니다. 언제 아버지 생각을 했습니까?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주는 자가 없을 때’ .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15:17) 쥐엄 열매 먹을 때도 아버지 생각이 안 났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거지같이 살면서 굶어 죽지는 않는 인생! 이런 사람 정말 힘듭니다. 쥐엄 열매는 그치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죽을 때까지 돼지 밥 먹다 죽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뭔지 아세요? 쥐엄 열매도 주는 사람이 없는 것, 그게 은혜입니다. 돼지 밥, 꿀꿀이 죽 먹을 때도 아버지 생각이 안 납니다. 언제 아버지 생각이 난다구요? 쥐엄 열매조차 주는 사람이 없을 때.
그래서 여러분!
우리 인생에 고난이 오면 한 번 돌이켜 보세요. 묵상해 보세요. 내가 쥐엄 열매 먹고 있는 인생은 아닌가? 그야말로 지저분하게 사는 건 아닌가? 우리 아버지 생각이 뭐겠어요? “믿는 자가 어떻게 이 따위로 사냐?”그래서 고난을 통해서 쥐엄 열매를 끊어버리는 거라구요. 그래서 주님 앞에 철저히 돌아오게 하는 것, 이게 은혜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끔씩 고난이 오는 건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깨우칠 수 있다면 괜찮은 겁니다. 다만 아쉽다는 게 뭐냐 하면, 그 시간 동안 시간을 낭비했다는 겁니다. 그 시간에 일을 했으면 얼마나 많은 것을 거뒀겠어요?
저나 여러분 모두 변화해야 되는데, 우리가 스스로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 때문에 탕자나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은 과정을 거칠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잖아요? 과정은 힘들겠지만 결국은 해피 앤드입니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말씀으로 우리를 권하실 때 변화되는 게 가장 좋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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